이사흘 : 볕과 그늘(EP)
- Jeon Yoodong

- 2023년 1월 11일
- 2분 분량
올해 동료 뮤지션의 음반이 발매되어도 따로 공유하지 않았다. 자신의 창작물을 내어주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잘 안다. 하지만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올리는 게 그렇게 큰 도움이 될까. 앨범을 받았으니 스토리에 올린다. 이게 생각보다 진심이 담기지 않을 수도 있을 거라 생각했다. 기계적이지 않나? 반사되는 칭찬처럼. 어떻게 진심을 전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전해 받은 소중한 앨범을 리뷰한다. 이 공간은 문장이 부족하더라도 꾸미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되는 공간이라서 더 편하게 쓸 수 있지 않을까. 당사자들이 볼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사흘님과의 만남은 신기함의 연속이었다. 부산에서 해변지하와의 공연에서 만난 사흘님의 얼굴은 아주 낯이 익었다. 언젠가 인디씬의 공연을 촬영하고 아카이빙하는 원표님의 유튜브 채널에서 세찬 바람을 맞아가며 15분의 공연을 이어가던 음악가였다. 우연히 그 영상을 끝까지 보며 엄청난 동기부여를 받았었다. 그리고 청춘마이크를 신청하며 나와 같이 어쿠스틱 기타 한 대로 무대를 채우는 사람들을 찾다가 본 사람도 사흘님이셨다. 그 영상을 보고 경남, 부산 지역 청춘마이크는 신청하지 않았다며 사흘님께 웃으며 말씀드렸다.
https://www.youtube.com/watch?v=fOV3SyujHi4
그 당시 EP를 준비 중이셨고 몇 달 뒤, 경주에서 예고 없이 재회했다. 사흘님은 크라프트지로 패키징 된 EP 앨범과 향초를 선물로 주셨다. 나는 서울로 올라가며 EP 앨범을 들었다. 앨범의 타이들처럼 사흘님의 목소리는 햇볕 같았고 사흘님의 기타는 공간과 감정을 담아내는 그늘 같았다. 잔잔하고 조촐한 소풍. 앨범에서 진행되는 서사에서 화자는 내내 강요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바라는 바를 담백하게 고백한다. 볕과 그늘이라니 질서와 엔트로피의 관계가 아닐까. EP 앨범 《볕과 그늘》에는 빛나는 누군가가 나온다. 몸과 마음을 녹여주는 누군가. 모두에게 그런 존재가 있다. 마음속에서 꺼내 보일 때, 반짝일수록 그늘도 짙어지는 이. 곡에 이입할수록 황홀해지다가도 쓸쓸해지는 마음은 기타와 목소리로 채워가는 이 앨범과 너무 잘 어울린다. (바이닐 노이즈, 피아노와 함께 한 트랙도 있지만 적극적이지 않다) 가사가 참 좋다. 시적 현실이 있다. 꾸미지 않았지만, 자신만의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 담담히 써 내린 글귀들. 더 첨언하지도 줄일 필요도 없을 것이다. 딱 하고 싶은 말들만 적었기 때문이지 않을까. 그렇다고 어렵지도 않다. 충분히 전해지고 해석할 여지도 충분하다. DSP에 등록된 가사만 보면 구와 후렴이 한 번에 구분되지 않는다. 아, 어쿠스틱 기타가 아닌 클래식 기타로 수록곡들을 연주하신 것도 참 멋졌다. 앨범에 담은 서사와 공간감에 제격이라 생각했다.
대부분 포크 뮤시션들이 기타와 목소리만 담긴 음악을 많이 발표한다. 제작비를 많이 아낄 수 있어서 좋겠다고 생각하겠지만 음악적 완성도를 생각했을 때 정말 힘든 작업이다. 일단 노래를 엄청나게 잘해야 한다. 어중간하면 곡에 집중할 수 없다. 연주력 또한 그렇다. 유채색으로 그림을 그리는 이들이 무채색으로 그리기를 어려워하는 느낌일까? 사실 그런 노래들이 대부분 음악이 아니라 제작비가 많지 않은 인디뮤지션 라이프를 떠올리는데 《볕과 그늘》은 온전히 음악에 집중할 수 있었다. 기타와 보이스만으로 이렇게 하는 거 쉽지 않다 정말로. 내가 2017년 발표한 EP 앨범 수록곡인 〈둥글게 굴러가는 네모난 나〉 또한 모자란 제작비로 기타와 목소리로만 편곡했다. 이후 엄청난 후회를 했다.
이사흘님의 《볕과 그늘》은 밤에 들으면 일렁이는 초가 되고 낮에 들으면 나붓거리는 햇살이 되는 앨범이다. 실제로 들어보면 음악에 기대는 느낌이 무엇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포옥 기댈 수 있는 앨범이다.
들어봐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