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빗소리에 잠이 깼다.

최종 수정일: 2020년 9월 10일


새벽에 비가 올 거라고만 했지 이렇게 많이 올 줄 누가 알았을까. 그간 정신이 없어 못 해주던 환기를 자기 전에 했는데 어마어마한 빗소리가 잠을 깨웠다. 목이 타는데 물이 없어 공연 때 챙겨온 커피로 목을 축였다. 몹시 나쁜 선택이다. 고육지책이다.


자기 전에 했던 고민이 있다. 다음 앨범을 포크로 내야 할까 정규앨범 사운드에 결을 맞춰야 할까. 전유동의 음악을 들어주시고 좋아해 주시던 분들이 정규앨범의 사운드를 좋아해 주셨는데 완전 포크로 가면 반응이 별로지 않을까. 록으로 가기에는 이번에 준비하는 노래들을 전부 갈아엎을 만큼 비벼볼 수는 있는 노래들인가?


그러다 문득 이런 질문을 했다. 내가 포크를 알고 록을 아는 사람인가? 포크는 김광석 노래만 몇 개 알고 아버지께서 LP로만 들으시던 노래들을 몇 개 주워들었을 뿐이지 김민기, 시인과 촌장, 한대수, 송창식, 정태춘, 장필순 이런 분들의 음악을 들으며 포크에 관해 고심한 적이 있었나. 3%도 못 들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록은 어떤가? 퀸, 핑크플로이드, 레드제플린, 너바나, 롤링 스톤즈 누구나 들으면 알만한 뮤지션들. 심지어 비틀즈 조차도 모르는 음악들이 많다. 포크와 같이 록에 대해 고심도 안 해본 내가 포크를 할지 록을 할지 고민하는 건 명백히 바보 같은 짓이었다.


어쩌면 정규앨범과 그 전의 음악들을 나열하고 지켜봤을 때 정규앨범은 편선님의 도움으로 장르적 큰 틀과 질감이 마련되었다. 이 경험은 나에게 아주 큰 행운이고 감사한 일이었다. 음악을 잘 찾아 듣지 않는 (망하기 딱 쉬운) 뮤지션에게 일생일대 찾아올까 말까 한 행운이다. 정규 앨범 이전에 음악들은 포크에 기반을 뒀다기보다는 그냥 어쿠스틱기타로 곡을 만들다가 편곡과 녹음까지 자연스럽게 어쿠스틱 가타가 사용되었고 장르적인 고심을 한 적이 없었다. 사운드클라우드, 밴드캠프, 뮤지션리그 그리고 발표 앨범의 장르를 정하는 일은 나에게 곤욕이었다. 나는 그저 내 음악을 해온 것이고 주변에서 저마다 전유동-클라우즈 블록은 포크다, 아니다 팝이다" 이견을 두며 나에게 말을 해줄 뿐이었다. 진짜 말 그대로 난 내 음악을 해온 것이고 내가 하는 음악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알아내기 위해 음악을 해왔다. 이번에도 똑같이 나는 어떤 사람인가 = 나는 어떤 음악을 하는가를 고민하며 곡을 쓸 수밖에 없다. 물론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도 중요하고 시장 안에 들어갈 규격화와 듣는이의 즐거움 또한 중요하지만 어떤 음악을 하는지에 대한 고민은 음악 제작의 최전방에 있어야 하는 원초적 주제일 것이다.


하루는 빨리 곡을 써내야 해! 하루는 조바심을 가지면 망해! 가속과 감속을 반복하던 나였다. 가장 커다란 고민이 일단락되었다. 전유동이 전유동 해버리면 되는 거였네. 좀 더 바보 같은 것도 해보고 싶고 좀 더 활기차거나 우스운 것도 해보고 싶지만 내 것이 아닌 것으로 덧대는 치장은 하지 말아야지.


날이 밝아 온다. 속 쓰려 커피 미워.


 
 
 

댓글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