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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미래를 노래하기로 했고

"내가 노래하는 순간들도 계속 과거가 되지 않겠어요?"


주안에 살 때는 한 달에 세 번 정도 시켜먹는 닭강정이 그렇게 좋았다. 늦은 시간까지 끼니를 챙기지 못해 배가 고프면 잠을 청하려고 했다. 하지만 잠도 오지 않으면 터덜터덜 편의점으로 가 손으로 집어드는 물건들의 가격을 하나 둘 합산한다. 이건 안 먹어도 되겠지 다시 있던 곳에 놔둬야지. 주안에서 지내던 원룸은 햇빛이 들어오지 않았다. 그래서 월세가 저렴했다. 그것이 나에게 희망을 안겨주었는지 비극을 안겨주었는지 지금에 와서는 제대로 알 수 가 없다.

집으로 돌아오는 골목 초입 고개를 들면 달이 떠있다. 신이 있다고 믿지만 기도하는 삶을 저버렸고 난 부모님의 신앙을 배신하고 등돌렸다. 그리고 나는 달을 보며 기도했었다. "다 잘 되게 해주세요. 저 정말 겸손하게 살게요. 잘 할 수 있게 해주세요." 나는 비루한 처지로 가만히 서서 오래 되뇌며 기도했다. (현재를 들여다보니 겸손한 건지는 모르겠다. 그냥 내 음악이 좋다고 하면 사고가 멈춘다. 진심을 가려내려는 것도 아니고 너무 감동 받는 것도 아니고 그냥 머리가 일을 멈춘다.) 늦은 시간 공연을 끝내고 무겁게 돌아오는 밤에도 나는 기도했다. 그 골목길에는 현금영수증을 안 해주려 개수작을 부리는 순대국밥집 사장이 있었고 길고양이들을 살뜰히 챙기지만 목소리 높여 욕을 하는 아저씨가 있었고 술에 취해 주먹을 날리는 청년이 있었고 닭다리에 살이 없다며 계속 빈정대는 아저씨가 있었고 주차를 개좆같이 해놓고 긁으면 책임질꺼냐고 시비를 거는 사내가 있었고 내가 있었다. 난 그 곳을 좋아했다. 점심을 나가서 먹게 되면 커다란 텀블러에 물을 뜰 수 있는 음식점에 가서 밥을 먹을 수 있었고 자주 찾아오는 나에게 음악이 참 좋더라며 반겨주시는 돈가스집 사장님도 계셨고 적적할 때마다 조금만 나가면 새벽에도 시끄러운 먹자골목이 있었다. 전에 살던 곳은 관리비가 많이 나오는 오피스텔이었고 그 전에 살던 곳은 세면대가 없었다. 주안에 살던 원룸에 새면대가 있었고 오래 됐지만 잘 돌아가는 냉장고도 있었다. 음악하기에도 딱 좋았다. 그래도 난 기도했다.

얼마전 공연을 하고 팬 분들께서 주시는 선물이 참 감사했는데 더 표현을 해야하나 싶을 정도로 감사함을 더(?) 표현하기가 쉽지 읺았다. 감사함이 사회 생활을 하며 기입된 수식이 되어버린 건가 싶었다. 그렇게 고착되기는 싫었다. 난 더욱 무엇을 해드릴 수 있는지 고민해야한다. 달을 보며 한 기도의 미래는 어쩌면 지금 만나뵙게 된 분들일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내가 누군가와 아는 사이고 누군가와의 서사에 있는 사람이고 그 서사에 담길만한 사람이기에 나를 좋아하는 분들도 분명 계신다. 슬픈 일일지도. 다른 누군가의 과거와 현재를 좋아하기에 나를 알게 됐지만 내 음악을 제대로 들어본 이는 거의 없었다. 그럼에도 전유동이라는 사람의 음악을 들어보고 공명해주시고 여기까지 함께 와주신 분들도 계신다. 난 이 분들을 보며 현연한 달의 기도하고 생각한다. 난 반사이익을 바란 적도 없고 한 번도 욕심낸 적 없었다. 말은 직접적으로 못 했지만 내 욕심은 최대한 투명하게 내비쳤다. 난 반사이익을 바란 적이 없다. 이 모든것도 과거가 되고 있다. 나를 스쳐간 억울함과 분통함 열에 여덟은 대게 부질 없을 것이다. 나는 남은 둘에다가 미래를 노래하기로 했고 달조각을 주으러 숲으로 갈거다.


용적률 8평 미만의 원룸에서 지금 간석동 18평 투룸은 작은 거실도 있다. 접이식 책상도 있고 책장도 있고 작업실도 따로 있고 행거도 있다. 전자레인지도 있고 에어컨도 있고 전신 거울도 있고 햇빛 잘드는 창가에 선반을 두고 식물을 기르고 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나는 아직도 달을 보며 기도한다. "다 잘 되게 해주세요. 그냥 모두 행복하게 해주세요."

잘 되어가고 있다 생각한다. 감사한 마음을 행동과 태도로 전해주고 훗날 보답하고 싶다. "곁에 있는 것은 물리적으로 있는 것만을 말하지 않아요" 한 번의 인터뷰와 한 번의 공연 사전 미팅. 많은 것을 깨닳았다. 돌아오는 길 "항상 어중간한" 날 보며 스스로에게 웃어준 날. 그리고 더 표현을 못 하는 것이지 난 정말로 더 감사하고 있다는 것도.


서교동성당을 지나며 성모상 앞에 초가 있었다. 봉헌하는 곳이다. 지갑에 덩그러니 있는 천원을 함에 넣고 초록색 초에 불을 붙여 오랜만에 성호를 그었다. 기도했다. 카톨릭 교리에서 가르쳐주는 기도문은 외우지 않았다. 나는 미래를 노래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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