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파
- Jeon Yoodong

- 2023년 1월 24일
- 3분 분량
요즘 새벽 4시에 잠이 들다보니 1시 2시는 뭔가 10시~11시처럼 느껴진 건지. 날씨가 많이 춥다고 들었지만 너무 방심했다. 동파가 되다니. 일찍 물을 틀어뒀어야했는데. 덕분에 설거지 거리가 잔뜩 생겼다. 오후에 따뜻해지면 녹으려나 몰라.
처음 서울에 올라와 지냈던 투룸 옥탑방이 생각난다. 아는 형이 월세 50만원 중 15만원만 받겠다 해서 상경하여 지낸 곳. 그곳에는 냉장고가 엄청 시원찮았고 에어컨이 없었고 세면대가 없었다. 에어컨은 없어도 버틸 수 있으니 세면대가 있으면 참 좋겠다 생각했다. 2년 뒤, 나는 인천으로 이사했다. 하루만에 계약을 했다. 알아볼 시간이 없었다. 세면대가 있는 깔끔한 오피스텔이 좋았다. 4층 옥탑에서 승강기가 있는 4층 오피스텔로 이사했다. 한 층에 엄청 많은 가구들이 붙어있었다. 방은 좁았지만 에어컨도 있고 세면대도 있었다. 하지만 매달 돈을 아껴보려고 노력했지만 관리비는 계속 올랐다. 사는동안 에어컨은 5번정도 켰다. 계약 3개월 전 집주인이 나가달라고 했다. 집을 알아보던 중 도보로 1분 거리에 원룸이 있었다. 그냥 보지도 않고 계약했다. 이삿짐 비용을 아끼고 싶었다. 집주인 분의 배려로 계약일 일주일 전부터 짐을 미리 옮길 수 있었다. 혼자 수십번을 왔다갔다하며 짐을 옮겼다. 집은 분리형 원룸에다가 세면대가 있었다. 2층이었다. 에어컨은 없었다. 그리고 빛이 들어오지 않았다. 나의 세 번째 집. 아주 고통스러운 시간동안 지낸 어두운 집. 여름에는 더위를 이겨내려고 벽에 붙어 잤다. 겨울에는 옷을 껴입고 컴퓨터에 발을 올려두고 살았다. 집으로 돌아오는 골목에는 달이 골목 가운데 걸려있다. 난 달을 보며 매일 기도했다. 다 잘 되게 해달라고. 아버지께서 정년퇴임을 하셨다. 아버지께서는 퇴직금으로 전세집을 마련해주셨다. 집은 내가 알아보았다. 부동산에서는 젊은 친구가 대출도 없이 돈을 모았다고 자랑스러워하셨다. 아버지께서 퇴직금으로 해주시는거라 직원분께 말씀해주셨고 음악을 하는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았다. 햇빛이 들지 않는 집에서 첫 전세집은 걸어서 40분거리였다. 나는 옮길 수 있는 모든 짐을 또 미리 옮겼다. 왕복 1시간 20분을 하루 두 번. 한 번에 들 수 있는 만큼 많은 짐을 들고 날랐다. 짐을 줄여서 이사비용을 깎아보려고 했다. 이사할 때 쓰지 않는 큰 가구는 신고 후 버렸다. 작은 용달차를 불렀는데 일부 짐을 미리 옮겨놓은 덕분에 알맞게 실을 수 있었다. 빛이 들어오지 않던 2층 원룸. 모든 짐을 비우고 나가려는데 환한 빛이 방을 감쌌다. 모든 것이 다 잘 될거라고. 고생했다고 배웅해주는 듯했다. 뭉클했다. 짐을 옮기는 날 다진이와 지인이와 주안이와 화수씨와 승윤이가 도와주겠다고 왔다. 오전에 짐을 거의 옮긴 후에 다진이가 와줬고 모든 짐을 옮긴 후에 다들 인천에 도착했다. 승윤이는 점심을 먹기 전에 도착했다. 모두들 돌아가고 걸레질 한 안방에 털썩 앉아 다진이와 승윤이랑 기타를 쳤다. 아주 오래된 전세집. 매물을 올리자 마자 나에게 연락이 왔었다고 한다. 빨리 세입자가 올지 몰랐다고 한다. 방을 보러 갔을 때 오래된 화장실을 보여주며 내 눈치를 살피셨지만 "세면대가 있는 화장실"이 좋았다. 산도 가까이 있어서 새가 많겠지? 생각했다. 승윤이는 나에게 "사는 동안 절대 저 산에 오르지 않을껄?"이라며 장난스럽게 말했다. 난 그해 첫 정규앨범 수록곡 뮤직비디오 촬영을 위해 산에 올랐고 자랑하며 승윤이에게 말했다. 그리고 이 집에서 3년 차다. 주인집 할머니께서는 추울 땐 춥고 더울 땐 더운 집인데 참 잘 지낸다고 말씀해주셨다. 난 "빛이 잘 드는 지금 집이 참 좋다"고 말씀드렸다. 살림살이가 많이 늘었다. 3년 전 나였으면 상상도 못할 궁전이다. 갖고 싶었단 수납형 침대가 있고(수납에 집착하는 편) 화분을 키우고 버드피딩을 하고 커다란 책장도 있고 쓰러지지 않는 행거도 있다. 근데 동파가 된다. 참 우스운 일이다. 만약 여길 떠나게 된다면 동파가 안 되는 집일까? 사실 껄끄러운 이웃보다는 동파가 낫겠다 생각든다. 여태 집에서 기타를 치고 노래 연습을 했지만 그 누구도 나에게 따져 묻거나 민원을 넣은 이가 없었다. 염치 없는 음량으로 노래하진 않지만 그래도 얼굴도 모르는 이웃들에게 항상 감사했다. 동파 정도야 나에겐 커피포트가 있으니까 어떻게 되겠지. 그리고 건조한 방에 주전자를 올려놓고 싶어 오방난로도 구매했다. 하루 종일 실내온도를 20도에 맞춰두고 지냈지만 지난 달 청구된 가스요금이 22만 7천원이다. 절망적이다. 공과금은 2만원 이하 원칙이 깨졌다. 방이 커졌으니 공과금 합계를 5만원 이하로 타협했는데 그만큼 여기가 추운 곳이라는 것을 깜빡했다. 헛웃음 한 번 짓고 여유롭게 음악 작업을 한다. 이렇게 할 수 있는 건 다 내 음악을 들어주시고 아껴주시는 분들이 계셔서이다. 이 집에 처음 온 20년 3월에는 클라우즈 블록이었고 그때는 가족과 지인과 몇 몇 친구들만 내 음악을 들어줬다. 그때는 마음의 여유가 없어 듣는다고 말만 하고 실제로 듣는지 의심부터 했다. 팬이라는 개념이 없었다. 감히 생각조치 못했던 시절이다. 동파가 되어도 내일 정규 음반 합주 준비를 하고 녹음을 할 수 있는 내가 되었다. 그리고 많은 이들이 나를 이렇게 만들어줬다. 사는 게 나름 신기하고 오묘하다. 이 글을 끝까지 읽은 분이 계시다면 2년 조금 넘게 매일 달에게 속삭이던 전유동의 기도를 바치고자 한다. "다 잘 되게 해주세요. 더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해주세요. 잘 모르겠지만 감사합니다. 그 작은 기회들을. 떳떳할 수 있게 해주세요. 항상 겸손하려고 노력할게요. 그런 사람과는 거리가 멀지만 노력할게요. 다 잘 되게 해주세요."
글이 자주 올라오는 곳이 아니라 저도 자주 들어오진 않는데 들어왔을 때 글이 있으면 반가워서 얼른 읽어 봅니다. 오늘은 두 개나 있는 걸 보니 정말 오랜만에 들어왔나 보네요.
'끝까지 읽은 분'이 있기를 바라셨는데 제가 거기 있어서 기쁘네요. ㅎㅎ 기도도 고맙습니다.
제 주변에 유동님 팬이 좀 있는데요, 저를 따라 공연을 갔다가 유동님 음악을 듣고 빠진 사람이 셋, 저와 이들이 여기저기서 틀어놓은 유동님 음악을 듣고 빠진 사람이 하나, 친구랑 떠들다 유동님 얘기를 했더니 "우리 남편한테 듣던 이름을 너한테 듣다니!"하여 발견하게 된 팬 하나. 특히 이 마지막 팬은 유동님 라방에서도 만나서 신기해 하다가 인스타 친구까지 맺었답니다 ㅋㅋㅋ 아, 제가 유동님이랑 찍은 사진을 올렸더니 대구의 자랑인 유동님을 많이 사랑해 달라던 친구도 있었어요. 노래를 듣다가 이 노래 부른 사람이 누구냐며 이름을 물어본 사람도 꽤 있었고요.…
제 마음이 정리되지 않을 땐 항상 유동님의 청소를 듣곤해요. 언젠가부터는 마음이 어지러울 때 이 작은공간에 와서 유동님의 글들을 찬찬히 읽게 되었어요. 삶이란게 늘 밝지만은 않지만 저는 그 가운데에서 늘 빛을 향해 걸어가는. 유동님의 겸손하다 못해 겸허하고 또 따뜻한 마음을 읽으며 마음을 정리하곤 해요. 유동님의 글 덕분에 한탄 뿐인 삶에 희망 한 숟갈 뿌리고 갑니다 :-) !
유동님의 음악도 참 좋아하지만, 저는 전유동이라는 한 인간을 참 애정하게 되었어요!
기대할 것 없는 삶이라 치부해 어떤 대상에게 기도를 하지 않은지 좀 되었지만...
오늘은 가벼운 마음으로 기도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당신의 기도에 한 숟가락 얹어봅니다.
'전유동 잘됐으면 좋겠다!'
'전유동 포에버!'
p.s.
자주는 못보지만 오래오래 보면 좋겠어요 ㅎㅎ
늘 당신의 친절과 따뜻한 마음에 감사해요 :-)
잠이 오지않아, 잠들 시간을 놓쳐서 날을 샜습니다. 합격자 조회를 했는데 이번에도 불합격. 좌절은 또 했지만, 한 두번도 아니고 지금 이 시즌은 비수기라 그렇다며 다시 이력서를 작성하고 제출했다는 확인차 받은 메일을 열었습니다. 그 밑에는 유동님 업데이트 소식이 있어 눌렀고, 제목이 동파였습니다. 밖을 나가지 않아도 실감하는 추위였기에 바로 화장실을 갑니다. 물이 나오질 않네요. 축하합니다. 외롭지 않겠어요. 동파동지입니다. 저 또한 후회해도 늦었지만 머리는 어제 감았습니다. 외출이 가능합니다. 다행이네요. 안도와 함께 유동의 글을 흥미진진하게 읽다 마지막 기도에 눈물이 납니다. 새 앨범을 기다리고 더 하고싶은 말은 이만 줄이고, 저도 기도합니다. '다 잘되게 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