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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27일

  1. 고개를 치켜뜨고 하늘을 향해 싱잉을 하는 작은 새의 소리가 어떻게 넓은 숲을 가득 채울 수 있을까?

  2. 공명이라는 단어가 머릿속에 아른거린다.

  3. 바퀴벌레 한 마리를 부엌에서 마주쳤다. 나는 보자마자 그 자리에서 그 친구를 불러 세웠다. 그 녀석도 가던 길을 멈췄다. "야, 여기 들어오면 어떡하냐! 잘못 들어온 거지?" (집바퀴 치고는 몸짓이 컸다) 몇 마디 하니까 벽으로 머리만 숨기며 눈치를 보고 있었다. "살려서 보내줄 테니까 기다려봐." 플라스틱 컵(오늘부로 벌레 잡는 용도로만 쓰게 될 예정)과 종이를 가져와서 생포했다. 녀석은 크게 저항하거나 도망가지 않았다. 밖으로 보내줬다. 살만해서 왔을 텐데 내쫓아야 하는 현실이 각박했다. 싱크대 배수구에서 또 냄새가 난다. 여름이 오나 보다. 냄새를 정말 어떻게 해야 하나 싶다.

  4. 군대에서 청소를 했다. 여름철이라 생활관 불빛을 보고 방충망에는 엄청나게 많은 날벌레가 붙어있었다. 나는 빨리 청소를 끝내야 했고 창틀에 엄청나게 많은 작은 날벌레들을 걸레질 한 번으로 모두 죽여버렸다. 손이 움직이고 나서야 아차 싶었지만 군인이었던 나는 취침 점호를 위해 멈추지 않고 청소했다. 취침 점호를 받으며 많은 생각이 들었다. 그 친구들을 죽일 자격이 나에겐 있었을까.

  5. 쓰다보니 생각이 났다. 고등학생 때 나의 볼펜 상자 안에서 집을 짓고 사는 개미들이 생각났다. 밖에다 버릴 걸 나는 놀란 나머지 욕조에 물을 붙고 상자를 버렸다. 나는 그때까지도 웬만해서는 벌레를 방생해주곤 했는데 상자를 열었을 때 손을 덮치는 개미들이 순간 너무 무서웠다.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욕조에다가 버리고 물을 틀어버렸다. 나는 그럴 자격이 있었을까.

  6. 주안에 살 때 현관에 엄청 커다란 바퀴벌레가 있었다. 너무 놀란 나머지 얼어붙어 있는데 내 앞에 있는 상자에 꼭 붙은 채 녀석도 얼어붙어 있었다. 나는 살충제를 가져와 엄청나게 뿌렸다. 멀리 도망가지 못하고 녀석은 죽었다. 나는 현관 밖으로 혼이 나간 껍데기를 밀어냈다. 그리고 집으로 나가고 들어올 때마다 보게 되었다. 다시 생각해보면 제발 나갈 테니 살려달라고 비는 것 같기도 했다. 그 이후로 바퀴벌레도 저항이 크지 않으면 대화(?)로 우선 풀어 나가보려고 한다. 실제로 대화로 잘 먹힌다. 두 번의 경험이 있다. 작년에도 엄청나게 큰 바퀴벌레 한 마리와 대치했었다. 나는 주안에서 죽인 바퀴벌레가 생각이 났다. 지능도 좋다고 하니 언어보다는 말속에 있는 마음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허무맹랑한 생각이 들었다. 오늘과 똑같이 말했다. 같이 지낼 수 없다. 살려서 보내줄 테니 가만히 있어 줬으면 좋겠다. 녀석도 가까이 다가갈 때까지 크게 저항하지 않았다. 보내주면서 예전에 죽인 녀석이 떠올랐다. 나는 "살려서 보내준다"는 말을 할 자격이 있을까? 죽일 수 있는 자격이 있을까?

  7. 이런 생각이 머리에 가득 차 있던 시절 모기도 이제 죽이지 말자 다짐했지만 모기에 물리며 밤을 지새우던 나는 삼 일 만에 모기 소탕 작전을 펼쳤다. 유동이는 참지 않긔.

  8. 사람마다 풍기는 느낌이 있다. 외적으로 보이는 것이 아닌 풍기는 오라와 같은 것. 나는 그것이 우리가 진동하기 때문이고 각자의 주파수로 진동하는 건 아닐까 생각했다. 그 진동이 공기를 통해 내게 닿아 공명할 때도 있고 그렇지 못할 때도 있다. 어쩌면 작은 새의 소리가 온 숲을 채우는 것도 숲과 공명한 것이 아닐까. 널 죽이지 않을 거라는 말이 녀석에게 어떠한 진동으로 닿은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9. 살 빼야 하는데 큰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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